Monday, July 22, 2019

"책 추천해 주세요"에 대답해 주고 싶은 말

이건 광화문 교보문고를 들렀다가 있었던 일을 생각해 봄과 동시에 평소에 커뮤니티 사이트나 개인적인 질문 중 많은 질문 중 하나인 "책 추천 부탁"에 대한 내 생각을 좀 써보려 한다.

7월 초쯤 아내가 논문 쓸 책 참고하겠다며 광화문 교보문고에 간다길래 나도 요즘 나오는 컴퓨터 관련 책이 뭐가 있나 볼겸 갔다.

<광화문 교보문고 사진, 요즘 서점은 책만 잔뜩 있는 곳이 아니라 북까페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다.
출처: 교보문고 사이트>

python, c++ 관련 책들이 있는 책장에서 못보던 책이 뭐 있나 살펴보던 중, 아무리 봐도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둘이 python이 낫냐 C가 낫냐 따져가면서 책을 골라보고 있었다. 사실 무슨 책을 고르는지는 관심이 없었는데 만약 학생이라면 언어를 정하고 그 중에 어떤 책이 좋냐를 고를 줄 알았는데, 골라야 하는 언어가 다양하다 보니 컴퓨터 관련 학과 학생이 맞나? 라는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여러 프로그래밍 언어 책을 고르는 이유를 물어봤는데 컴퓨터 전공 학생들은 아니었고 정보통신? 정보보호? 과라고 해서 프로그래밍을 배워서 해야 하는 과제가 있어서 책 보러 왔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나이가 좀 많이 들어 보여서 그런지 이 여학생들이 나를 보자마자 한다는 얘기가 "교수님이세요?" 라고 하더라. 서점에서 무슨 책 보는지 물어봤을 뿐인데, 교수님으로 보였나 보다.

그래서 개발자고 학생들 멘토링 해주는 일도 하고 있다고 하니까 C언어 중에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사실 그 학생들에게는 아무 책이나 추천해 줘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뭐라고요? 아무 책이나 추천해 준다고요? 왜 그런 성의없는 짓을 하죠?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학생들에게는 좋은 책이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 책을 골랐던 공부를 하는데 얼마나 시간을 투자해서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고, 그 책을 통해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추천해 준 책은 시중에서 잘 나간다는 책 몇 권을 골라주기는 했다. 그런데 그걸 골라가지는 않더라. 왜냐하면 자신들도 더 판단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겠지. 이미 자신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남이 추천해준 책이 좋을 수 있지만 내가 좋아보이는 책을 고르는게 더 맞다는 생각이겠지.

여기서 부터 나의 얘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주는 일을 하고 있기도 하고,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알려 줄 수도 있는 선배 개발자의 위치에 있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추천해 주지 않는다는 얘기부터 한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사족을 단다.

  • 책을 딱 한권만 읽고 말거면 추천해 줄 수 있지만, 같은 주제로 다양한 책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추천이 어렵다.
  • 또 나한테 좋은 책과 너한테 좋은 책은 상대적인 기준이 다를 수 있으므로 섣불리 추천해 주지 않는다.
  • 그리고 책 만족도에 있어서도 추천해 준 책을 보고 후회를 하던 자신이 고른 책을 보고 후회하던 후회의 강도가 같을 것 같지만, 남이 추천해 준 책을 보고 후회를 한다면 후회를 넘어 추천해 준 사람에 대한 근본없는 분노를 느끼기 충분하기 때문에 추천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대뜸 책 추천을 해달라고 서슴없이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이 뭘 하고 있는지를 좀 살펴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조사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왜 그러냐 하면, 자신이 이 분야에 관심이 있고 공부를 하고 싶고 잘 알아서 지식을 쌓거나 회사 취업을 위해 준비하거나 업무를 더 잘하려는 마음 때문에 책을 보고 싶어 할 것인데 뭔가 좀 찾아보고 본인이 판단해 봐도 될 것을 남의 판단에 의지해 묻어가려는 심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에 그렇다.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가르침을 받고 싶은 심정 또한 이해가 가긴 하지만, 자신도 뭔가 알아보고 난 후에 책을 추천해 줄 사람과 "communication"이라는게 됐으면 좋겠는데 대충 흘러가는 식이
  • XXX 책 추천해 주세요
  • YYY 책 추천 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이렇다 보니 질문하는 사람도 뭔가 검증 절차도 없이 넙죽 받아먹기만 하고, 대답해 주는 사람도 자신의 관점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추천해 주는 식이다 보니 뭔가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것도 내 생각이다.

책 추천에 대한 질문과 더불어 책을 추천받고 싶은 이유, 내가 어떤 분야에 뭔가를 하고 있다는 내용, 그래서 뭘 더 하고 싶은지에 대한 내용이 있으면 "communication"을 위한 시작이 좋다고 보고 싶다. 당장 책 추천 질문에 자신의 상태와 책을 보고 싶은 이유에 대해 장황하게 쓰는게 귀찮고 어렵다면 미리 자신의 블로그나 github 관련 페이지를 준비하고 링크를 걸어 주는 정도로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질문을 해야 추천해 줄 사람도 그 사람의 history를 파악하고 책을 추천해 줄 수 있을 것이고, 책 추천해줄 사람이 조금 더 질문을 하는 식으로 해서 정말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도 얘기해 줄 수 있다. 비록 책 추천이 아니더라도 더 좋은 얘기를 들을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 그렇게 준비하는게 귀찮고 그냥 책만 추천 받아 보고 싶으면 자신보다 더 잘알지 잘모를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답변 해 주면 감사하다고 하며 의지하지 말고, 본인의 검색 능력과 인터넷 글의 평점, 후기 등을 잘 읽고 판단해서 스스로 책을 고르는 주체적인 사람이 되어 보도록 하자.

--- 추가 내용

사실 책 추천의 수준이 python, android, javascript 등 특정 프로그래밍 언어 공부를 할 수 있는 책이다 보니 추천의 어려움을 넘어서 추천을 해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이런 책은 수십권 아니 수백권이나 되기 때문에 정말 자신에게 맞는 책을 보고 열심히 공부한다면 좋은 책을 골랐던 아니던 그 차이가 크게 없을 것이라는게 나의 생각이다.

혹시 그럴수도 있다. 한가지 주제를 정해서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유일하게 추천(?) 수준이 아니라 볼 책이 그 책 밖에 없을 때. 과연 그런책이 존재하기는 할까 싶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책이 존재할까? 놀랍게도 있다.

자 만약 "프로그래밍이라는 행위에 대한 고찰과 그 프로그래머의 심리에 대해 나와 있는 책을 추천해 주세요" 라고 한다면 아마 아래 소개한 책이 유일할 것이다.

프로그래밍 심리학 - 10점
제럴드 M. 와인버그 지음, 조상민 옮김/인사이트

하지만 여태까지 이런 주제로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사실 추천해 달라고 하기 전에 검색해봤을 테니 이 책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추천해 달라는 질문 자체가 무의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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