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pril 30, 2018

프로그래머가 되기 까지의 회고(2) - 중고등학교 시절

2편을 쓰기까지 3년의 시간이 걸렸다.
오래 걸릴 일도 아니었는데, 그 동안 글 쓸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 외에는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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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머가 되기 까지의 회고(1) - 태어나서 초등학교 시절까지

초등학교때 까지 컴퓨터 학원을 착실히 다니고
컴퓨터 학원 원장님도 날 괜찮게 봐주셨는지 엄마도 내가 나름 컴퓨터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처음으로 컴퓨터 선물을 받았다.
삼성 알라딘 286 AT 컴퓨터로 그 당시에는 흔하지 않은 256색이 나오는 컬러 모니터에 40M 하드 디스크도 장착되어 있는 정말 부의 상징이 따로 없는 컴퓨터였다.

내 기억으로는 그 컴퓨터 가격이 거의 250만원에 육박했는데 컬러 모니터만 거의 70~80만원대였고 흑백 모니터로 샀다면 150만원은 넘었던 가격이었다. 하드디스크도 없고 흑백 모니터만 있는 컴퓨터도 100만원 부터 시작이었으니 정말 큰맘 먹고 사주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난 부모님의 기대에 크게 부응하는 그런 짓(?)을 하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처음에는 학습 명목으로 학원에서 배웠던 basic 프로그램도 짜고 교육용 프로그램도 설치해서 쓰고 했었지만, 사람의 마음이 간사해서 그 동안 학원에서만 했던 PC 게임들을 컬러로 할 수 있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좋았던 시기였다.

<호화스러운 컴퓨터로 접해서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서 플레이한 대항해시대,
현재 steam에서도 14,000원이라는 자비없는 가격에 판매중이다.
출처: steam https://store.steampowered.com/app/521720/Uncharted_Waters/>

일단 대항해시대, 삼국지, 프린세스 메이커 등 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분들이라면 할 얘기가 많은 그런 게임들을 나도 플레이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사실 게임 얘기를 하면 끝도 없고 그 시절에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될법한 뭔가를 했냐가 중요한 포인트이기에 그 얘기를 더 해보자면, 특별히 한 건 없다. 내가 좀 쓸데없이 거만한 면도 없지 않아 있었던게 초등학교 시절에도 컴퓨터 자체를 아는 친구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었다. 그런 친구들이 중학교에 진학했다 하더라도 딱히 달라진건 없었다. 그러니까 그 놈들이 그대로 헤쳐모여서 중학교에 모여 왔을 뿐 특별히 프로그래밍에 취미가 있다던가 하는 친구들은 없었다.

물론 프로그래밍하고 상관없이 컴퓨터를 쓰는 것 자체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은 꽤 됐다. DOS 최신판 구해서 뭐가 달라졌는지 써보기, PCTools 버전업 되면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사용법, 배치파일 작성법 정도만 할 줄 알아도 컴퓨터에 대해 꽤 잘 아는 친구였었다. BASIC이나 C언어에 대해 논할 수 있던 친구를 만난 건 대학을 진학하고 나서였으니까.

중고등학교 시절에 프로그램 짠건, 어느 PC 잡지에 BASIC으로 달력 출력하는 코드 따라 쳐본거, 그리고 Q-Basic 언어로 낱말 맞추기 프로그램 짠거 따라 쳐본게 전부였다. 사실 C언어도 따로 공부한것도 하나도 없었고 잡지에 어떤 개념이 나오면 그냥 BASIC하고 어떻게 매핑되는 코드인지 정도만 봤었다. 그렇다는 것은 포인터라는 개념은 하나도 없었고 그게 어떻게 동작하는지도 모른채 그냥 잡지에 Text 상에 있는 내용의 결과가 이렇게 나오겠거니 하는 눈 디버깅 해본게 해본게 전부였다는 것이다.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내가 한 건
  • BASIC 프로그램 짜는 방법을 잊어버리지 않았던 것
  • 한글과 영문 타자 연습을 꾸준히 했던 것
  • 삼국지 게임을 통해 숫자 키보드로 빠르게 숫자 입력하는 능력을 가진 것
  • PC 잡지, 게임 잡지 같은걸 꾸준히 보면서 프로그래머 (정확히는 게임 프로그래머)가 되겠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었다는 것
이정도였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때 쯤 덥고 무료한 날에 수학의 정석 책만 쳐다보다가 무심코 교과서의 수학책을 리뷰해 보면서 뭔가 제대로 수학을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 번뜩이는 생각이 뭐였냐 하면 그 전까지 수학은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뭔가 공식 같은걸 외워서 낑낑대면서 따라가기 바쁜 그런 공부였는데, 다시 찬찬히 보니 수학은 그렇게 공부하는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어떤 원리가 나온 이유, 왜 이런 방법으로 수학적인 체계를 만들고 검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생각의 흐름을 읽다 보니 여태까지 바보 같은 공부를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 이후 처음부터 다시 개념을 이해하는 공부를 다시 시작해서 혼자 미친듯이 시간을 투자해 공부해서 수학 점수가 엄청 잘나왔었다. 수학을 좋아해서 이과를 선택한 것도 아니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때 부터 수학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게 수능을 볼 떄도 반영이 되어서 상위 5%에 달하는 수학 점수를 받았다.

그게 컴퓨터공학과를 진학해서 프로그래머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에 상당히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는 걸 한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대학 다닐때만 해도 크게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했었고 코딩을 잘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프로그래머가 되려고 내가 그렇게 수학을 열심히 공부했나 하는 결과론적인 착각도 하게 된다.

중고등학교 때의 기억은 정말 게임만 미친듯이 했지만 "컴퓨터를 가지고 뭔가 하는 직업"이라는 막연한 꿈을 그냥 놓치지 않고 지냈던 것 같다.

2 comments:

  1. 솔직 담백한 글 잘 보았습니다. 프로그래머는 수학을 잘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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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사합니다.

      제 글에도 나와 있지만 수학 잘해야 하는건 맞는데, 정작 수학에 맛들려서 열심히 했을 때는 프로그래밍하고 상관 없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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